[전문심화] 관계가 힘든 당신, 멘탈라이징 필요한 이유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그가 아무 대꾸도 없이 방에 들어갔다. 그런 그를 보고 있던 그녀의 생각 회로엔 스위치가 켜진다.

'왜 나를 본척만척하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아니면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

그가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방문을 박차고 들어가 따질까 하다 그녀는 그가 나오면 자신도 똑같이 그를 무시해 주겠노라 다짐한다.



그는 왜 아무 대꾸도 없이 방에 들어갔을까? 그녀의 첫 생각처럼 당일 아침 그녀에게 화가 나는 일이 있었을 수 있다. 아니면 그녀가 화가 난 이유처럼 그녀를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와 상관없이 그저 오늘 하루 회사 일이 너무 고단해 아무런 대꾸도 할 힘이 없었을 수도 있다.


안정 애착 유형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행동을 다양한 관점에서 상상하고 해석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자가 뜻밖의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에 바로 반응하기보다 멈춰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물어볼 수 있는 여유까지 보인다. 


그러나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다. 매몰 상태에서 상대의 행동을 지레 짐작하고 충동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 느낌은 의식되지 못한 채 사실이 되어 감정적인 반응을 이끈다.  


따라서 자신의 불안정 애착 유형을 변화시키고, 이것을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멘탈라이징에 그 답이 있다.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부정적 정서가 대물림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다면 오늘부터 멘탈라이징을 연습해 보자.



멘탈라이징이 주는 유익 

멘탈라이징이 무엇인지는 지난 편에서 다뤄 보았다. 이번 시간에는 멘탈라이징에 힘쓸 때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

첫째, 멘탈라이징은 내가 누구인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자기 인식을 증진시켜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 나'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 관계를 진짜 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채 그저 열심히 살아가며 공허감을 느끼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즉 자신의 욕망이 진짜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다른 사람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주입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어릴적부터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라고 듣고 자란 아이는 커서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착각하게 될 수 있다. '바람 피운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살아?' 라는 주변의 신념이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를 가리는 경우 이혼 후에 혼란스러운 상태를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 인식이 되지 않은 상태라면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어렵게 성공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만족을 느끼기는 어렵다.  


'진짜 나'를 만난다는 것은 곧 내 내면의 욕구나, 감정, 생각, 신념 등을 왜곡없이 자각하는 것이다. 멘탈라이징은 특정 상황에 매몰되기보다 한 발자국 물러나 그 상황에서 내가 갖는 개인적인 바람이나 욕구, 감정과 신념  등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함으로써 자기 인식을 돕는다. 멘탈라이징에 힘쓸수록 차차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더 나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둘째, 멘탈라이징은 우리가 삶에서 맺는 관계의 질을 높여준다.

배우자와 갈등 상황에 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감정 조절도 잘하는 나인데 유독 배우자 앞에서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남이 하면 괜찮은 행동도 배우자가 하면 그렇게 화가 치밀 수 없다. 고조된 감정 이면에는 간절한 바람, 강렬한 욕구가 있다. 


즉, 내가 그렇게 화가 나는 것은 가장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대상이기에 그만큼 강하게 무언가를 그에게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고조된 감정은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가린다. 의지적으로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이상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지나가기 십상이다. 이렇게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반응적으로 감정적인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를 잘 인식하면 할수록 상대방의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횟수는 줄고 행동하기 이전에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내가 원하고 필요한 것, 나의 감정과 나의 생각을 상대에게 조금 더 명확하게 전달해 관계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멘탈라이징의 태도를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나의 감정, 욕구, 생각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것에도 동일하게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상황에 매몰되어 감정이 격양된 상태에서 타인의 마음을 신경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내 마음도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여지가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나의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나를 인식해 가다 보면 나의 중요한 대상인 상대방의 마음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궁금증은 매몰상태에서 느낌만으로 단정지었던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따라서 건강한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된다. 


멘탈라이징의 태도를 갖고 서로를 대하기 시작하면 서로에 대한 상호이해와 서로가 느끼는 정서적 친밀감이 점차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나를 이해해 주는구나 느낄 때 우리는 그 관계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보호받는 느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고 받을 수 있다.


멘탈라이징은 이처럼 자기 이해를 높이고,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능력을 높여 관계의 질을 향상시켜준다.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켜줄 뿐더러 정서적 빈곤의 대물림을 끊는 선순환을 낳는 것이다.


멘탈라이징, 왜 어려운가?

그러나, 이러한 유익을 머리로 충분히 이해한다 하더라도 멘탈라이징을 실제 삶 속에서 셀프로 실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멘탈라이징의 태도를 갖고 상황을 마주하기에는 우리의 내면에서는 이를 저지하는 수많은 역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릴 적 애착 관계에서 깊은 상처, 즉 외상(trauma)을 경험한 경우라면 특히 더 그러하다. 부모로부터 반드시 제공되어야 했던 신체적, 정서적 공감을 받지 못한 과거의 아픔이 있다면 멘탈라이징은 단순히 어려운 일이 아니라 공포스러운 일일 수 있다. 

2007년 포나기 Fonagy와 그의 동료들이 실시한 연구는 애착 관계에서 아동이 외상을 경험할 때 정신화와 관련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해 준다. 


어린시절 경험한 깊은 상처는 그 자체만으로 아동에게 강렬한 고통을 준다. 그러나 아동은 아직 이 고통을 스스로 완화할 수 있는 능력, 즉,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한데, 대개 주양육자인 부모가 이 고통을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한다. 아이의 고통을 달래주는 역할이 양육자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시 아이는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정서적 세계로부터 방어적 철수를 하게 되고 정신화를 회피하게 된다. 아이에게 정신화는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운 감정을 직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어릴 적 이러한 애착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친구, 선생님, 배우자 등 성장하면서 맺는 다양한 대인 관계 상황에서 동일한 정신화 회피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나와 상대의 정서적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이 매우 공포스러운 일이기에 그저 알고 싶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정 애착의 성인이 멘탈라이징을 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하다. 평생을 두려워하고 피해 왔던 작업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멘탈라이징이 주는 유익은 그 작업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어릴 적 그토록 바랐던 나의 고통을 달래주는 역할을 지금 나 스스로에게 해 주면 어떨까. 그것이 어렵다면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 지금껏 줄곧 피해 왔던 작업을 하겠노라 결단한 신디의 메이트라면 이미 한 걸음 성장한 것이라는 걸 기억하자. 

관계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때론 아프기도, 큰 용기를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나를 만나고 알아가다 보면 이전보다 더 행복하고 나답게 사는 나를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될 것이다.




Reference

Fonagy, P., Gergely, G., & Target, M. (2007). The parent-infant dyad and the construction of the subjective self. Journal of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 48(3-4), 288-328.

이수림, & 이문희. (2013). 애착외상(attachment trauma)의 이해와 치료적 함의. 청소년상담연구, 21(2), 413-448.



   NO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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